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브런치 글쓰기

선풍기 - 사물에 대해서 쓰지 말고, 마음에 대해 쓰라

날씨가 더워지면서 1인용 손 선풍기를 많이 들고 다니지만, 작고 편한 선풍기보다는 부채를 좋아한다. 휴대하기도 좋고 넓게 펴서 햇빛도 가릴 수 있고 내 마음대로 바람 조절도 가능해서 여름에는 부채를 항상 가지고 다닌다.
몇 년 전에 열심히 캘리그래피를 배우러 다닐 때, 부채에 글 쓰는 시간이 있었다. 좋아하는 문구를 부채에 써보는 시간이었는데, 박노해 시인의 “잘못 들어선 길은 없다”의 한 구절을 적었다. “삶에서 잘못 들어선 길이란 없으니 온 하늘이 새의 길이듯, 삶이 온통 사람의 길이니” 라는 구절을 적었다.

 

그때 회사를 그만두고 무얼 할까 고민하던 시기였는데, 그 시가 마음 깊이 위로가 되었다. 특히 온 하늘이 새의 길이듯 삶이 온통 사람의 길이니, 라는 말이 와 닿았다. 모두가 똑같이 회사를 다니거나 일을 하며 사는 인생에서 잠시 떨어져 나왔다고 불안해할 것도 없다 라고 생각했다. 나도 내 길이 있겠 거니 하고 그 시절을 유유자적하며, 아이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에 감사하며 지냈다.

여름에 그 부채를 다시 꺼내보면, 내가 받았던 위로와 감사한 마음이 생각난다.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도 부채가 마음에 들었는지, 1인용 선풍기 대신 그걸 들고 다니면서 “우리 엄마가 쓴 거야”라고 자랑하고 신나게 가지고 다니다가 그만 잃어버리고 말았다. 내게는 부채 이상의 의미가 있는 소중한 것인데, 참으로 아쉽다. 하지만 아이도 나처럼 1인용 선풍기보다는 부채를 좋아하다 잃어버린 거니 크게 야단치지는 않았다. 그 부채를 누군가 주워서, 내가 받았던 위로를 받게 된다면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. 나에게 할 일을 마치고 다른 이에게 찾아간 것이라 생각한다. 그래도 보고 싶다. 내 부채!

 

캘리그래피를 배웠던 초기의 글씨체. 지금이라고 실력이 많이 늘지는 않았지만 풋풋한 느낌이 좋다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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